공무원 

강성철 시인
강성철 시인

 

                                                                                                   

누구라도 한번

지축을 흔들고 싶지 않겠는가

 

저온과 고온의 차이가 심한

해수와 육지 사이에서

한 번의 날갯짓으로

태풍을 만드는 나비

 

삼십 년이란 세월 동안

한 평 남짓한 자리에서

날갯짓 한번

제대로 못하고 살아온 나

 

바람이 불면 그 바람에 실려

안개 속을 헤매다

쏟아지는 비를 맞을지라도

쾌적한 자리를 찾아다녔는데

 

이제 온종일 누군가의

그늘을 걷어내는 꿈을 꾸며

부드러운 날개를 몰래 펼쳤다가

가만히 접어보네.

 


[논평] 이종섶 시인·문학평론가

이 시집의 표제시 「공무원」에는 이와 같은 한 개인으로서의 ‘혼돈에서 질서 찾기’가 정서적 중심축을 형성하고 있고, 동시에 나비효과에 등장하는 나비 한 마리의 날갯짓이 빚어내고 규정하는 ‘혼돈의 감정 정돈하기’라는 진폭이 또 하나의 울림을 형성하고 있다.

사람이라면 보통 꿈을 가지게 되고 그 꿈은 현실 속에서 유형무형의 어떤 것을 소유하고 이루는 것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강성철은 그 꿈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누구라도 한번/지축을 흔들고 싶지 않겠는가”라는 아주 묵직한 심정을 토해낸다. 이것은 꿈이라고 말하기는 어려운 성질의 것이어서 보다 근원적인 입장으로 접근해야 강성철의 서정을 풀어나가면서 규명할 수가 있다.

그것은 앞서 말한 대로 혼돈 속에서 확실한 그 무엇을 이루거나 해결하고자 하는 어떤 결정론적인 법칙과도 같은 것이다. 이것을 확실하게 드러내면서 강조하기 위해 ‘결정론적 혼돈’(deterministic chaos)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이런 입장에서 보면 강성철이 가지고 있는 정서의 기저에는 결정론적 혼돈이 짙게 드리워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저온과 고온의 차이가 심한/해수와 육지 사이에서/한 번의 날갯짓으로/태풍을 만드는 나비”라면 결정론적 혼돈은 선택도 우연도 아닌 필수요, 필연이다. 그 환경은 “저온과 고온의 차이가 심한” 곳이며, “해수와 육지 사이”이며, 게다가 “한 번의 날갯짓”을 통해 “태풍을 만”들기 원하는 상황이기도 하다. 이것이 과연 가능한 일인가를 넘어서 이미 “만드는 나비”라는 완료 서술을 통해서 결정을 했고, 결정이 되었으나 여전히 이루어지지 않은 가상의 결정이었으므로, 결국 결정론적 혼돈에 도달했다고 할 수밖에 없다. 그 위치가 바로 “삼십 년이란 세월 동안/한 평 남짓한 자리에서/날갯짓 한번/제대로 못하고 살아온 나” 자신이었기 때문이다.

혼돈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리고 혼돈에서 벗어나 무엇을 결정하기 위해 무던히도 애써왔던 삶이 결국에는 ‘나비의 날갯짓’에 불과했다는 것은, “바람이 불면 그 바람에 실려/안개 속을 헤매다/쏟아지는 비를 맞을지라도” 결코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쾌적한 자리를 찾아다녔”다는 서술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래서 결국에는 제자리로 가만히 돌아와 앉아 자신을 살펴보면서, “온종일 누군가의/그늘을 걷어내는 꿈을 꾸며/부드러운 날개를 몰래 펼쳤다가”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채 “가만히 접어보”는 결말에 이르렀다. 그리고 인생의 한순간 한순간이 여전히 결정론적 혼돈의 자리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확인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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