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흔 어지럽다 숨 가쁘다초점 없는 눈동자문 앞에 엎드린 죽음을 끌어안으려먹고 있던 약을 끊으셨단다 하나님께 부탁하다가하늘나라에 있는 어머니에게 부탁하다가먼저 간 남편 불러나 좀 데려가라고 날마다 조른다며한마디 하신다 징한놈의 목숨이 쇠심줄이여야그래도 느그가 잘해준께오래오래 살고 싶어야빨리 죽어야 느그가 고생 안 하는디으짜끄나으짜끄나 죽고 싶다가도 살고 싶어하루에도 몇 번씩천국과 세상 사이에서헤매고 있는 어머니
귀와 귀 육신의 귀가 닫힌 어머니와영혼의 귀를 닫은 딸이시골 예배당에 나란히 앉았다 기도하겠다는 소리에 찬송가 뒤적이고성경 보겠다는 말에 기도 시작한 어머니말씀이 끝나가는데 아직도 기도 중이다 영혼의 소리를 듣고 있는지하늘 가는 길을 헤매고 있는지끝날 줄 모르는 기도 부대끼며 사는 현실이 너무 벅차다며듣는다 하면서 귀 닫고 사는철부지 자식이고향에 내려와 예배드린다 눈에 귀가 있는지마음에 귀가 있는지바깥소리는 더디 들어도딸의 속마음은 재빨리 들으시는 어머니 예배드리는 내내육신의 귀를 닫으시고자식을 위한 기도만 하신 것이다
스미다 요양원에 가지 않고 혼자 사는 어머니간고등어 몇 마리 들고수술한 발목 붕대로 감고고속버스에 몸을 실었다 한때는 어머니와 시간 가는 줄 모르고전화기만 붙들고 살았다어머니 가슴에 쌓인 것 꺼내다 보면어느새 하루해가 기울었는데이제는 소리와 인연을 끊고 사시니내려간다는 기별도 못하고 길을 나선다 누군가를 기다렸는지 활짝 열어놓은 대문기도에 깊이 빠져있는 어머니꿋꿋하게 자식 위해 기도하는 날들이혼자 사는 버팀목이었는지언제부터 자식에게 뻗는 마음이 저렇게 깊어졌을까 평생 바깥으로 나돌던 아버지 기다리더니이제는 자식 오는 날 손꼽으신다살
화전 파릇한 봄바람이 불어오는 능선진달래가 한창이다 가슴에 아들을 품고 살던 어머니언니 시집 보내고아들 아들 천만 번 기도했다 드디어 아들 낳았다는 소식어머니 가슴에서 덩실덩실노랫가락이 절로 나온다 진달래 한 소쿠리쌀가루 반죽 위에 웃음꽃으로 다시 피어언니네 갈 채비 서두른다 석작에 차곡차곡 정성스레 담아손자 만나러 갈 생각에 들뜬 어머니환하게 피는 언니 얼굴 해마다 이맘때면아들 아들 기도하던 어머니능선마다 그 정성을 부치신다
열 살 무렵 외할아버지 손을 놓지 못하고서럽게 우는 어머니 곁에 서서처음으로 생명이 떠나버린 사람을 보았다 중요한 부분만 작은 종이로 가린 후시신에 소독약을 바르고떠날 채비하는 마지막 모습 내 등엔 열 살 터울로갓 태어난 여동생이 업혀 있었다 불임 전문 한의사로 명성이 자자했다는 외할아버지당신의 셋째 딸인 내 어머니에겐 통하지 않았는지아들을 점지하는 일에는 능력이 없었는지탕약에 뜸에 침에애를 써도 어머니는 아들을 낳지 못했다 손자 못보고 떠나는 것이 한이라는유언 같은 말까지 남겨어머니가 그토록 서럽게 울었던 이유를나중에야 알았다 죽
동행 외출할 때도 약속이 있을 때도주름진 목을 부드럽게 감아화사하게 돋보이게 하는 스카프 세찬 비바람에 노출된 후얼룩지거나 구겨지는 것이 싫어세탁하고 다림질하며풀어지는 올 한 가닥까지 바늘에 감아햇살 한 줌 보태 시침질했다 마음의 동요 없이 무심하게 지나치다가때론 갑자기 이끌리는 변덕스런 감정예쁘게 화장하고 둘렀어도햇빛이 쨍쨍 내리쬐는 날에는 벗어야 했다 오랫동안 무늬를 읽고질감을 느꼈지만보이지 않는 마음은 알 수 없었다경험해 보지 못한 내일을 위해서로 안고 안기면서 살아간다 수많은 바람의 날들을 지나오는 동안그 속에 담긴 따스함을
씨도둑은 못한다 김장하고 남은 미나리 뿌리유리병에 담아 주방 창에 두었다밑동까지 잘라 죽지 않을까 걱정했는데다시 숨을 쉬고 물을 빨아들이며제 세상 만난 듯 쑥쑥 자란다 주방에 들어오면 뭐 떨어진다고어깨에 뽕 세우고 당당하게 사는 남편싱싱하게 올라오는 미나리 보더니오징어회가 먹고 싶단다 한 주먹도 안 되는 미나리 싹둑 잘라오징어 쪽파 아울러고추장 설탕 식초 갖은 양념 넣고새콤달콤 버무렸다 오징어 회 판이냐?아따 맛나다십몇 년 전 돌아가신 시아버님과저녁상을 마주한다 끝난 줄 알았는데 다시 살아나는 미나리처럼퇴직한 후에도 기죽지 않은 남
개미와 베짱이 부부 현관 비밀번호 누르는 소리텃밭에 출근했던 남편이 퇴근한다들고 오는 가지 몇 개 고구마 줄기 한 봉지기분 좋은 날은 호박이며 고추며 감자며현관에 들어설 때마다 빈손인 적 없다 첫아이 입덧 심할 땐마른오징어 좋아하는 걸 뻔히 알면서도주머니가 비어 붕어빵 두 개품속에서 꺼내주었다 퇴직 후에 할 일을 찾아 동동거리다가산 밑에 자그마한 텃밭 만들고농사꾼 된 지 벌써 몇 해한 번도 같이 가자는 말이 없다볕 따갑고 벌레 많으니집에서 책이나 읽으라며 신발을 신는다 사십 년도 더 넘는 기간 동안남편만 의지하며 살아왔다벌어 온 것
폭풍주의보 완도 여객 터미널 제3 부두돌아올 남편을 기다린다바다에 떠 있는 수많은 섬꿈틀거리며 해를 받아들인다 폭풍주의보가 내려지고태풍의 입김이 바람을 일으킬 조짐이다두려움이 항구를 부풀리자갈매기 소리만 가득 싣고 있던 배가출렁거리기 시작한다 파도를 헤치며 오고 있을 그 사람무사히 도착할 수 있을까가슴 졸이는 시간은 더디기만 하여저 바다 어디쯤에서 폭풍에 가라앉은수많은 사람을 떠올린다 물거품처럼 사라진 영혼을 생각하며물음표가 일렁이는 동안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드는 파도를 뚫고남편이 탄 배가 들어온다 기다림을 풀어놓은 밧줄이 내려오
모래시계 끊임없이 뒤집히지만삶은 늘 제자리 시간에 쫓겨바늘구멍같이 퍽퍽한내일을 기웃거린다 유리 감옥에 갇혀반전을 기대하지만번번이 바닥으로 떨어진다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내 속을 홀딱 뒤집는다 그래도 다시일으켜야 하는 오늘
찌르는 가시 눈동자를 찌르는 속눈썹족집게를 이용해 잡히는 대로 뽑았다 값나가는 족제비털이나 토끼털도 아니고현미경이 아니면 잘 보이지 않는 털인데언제부턴가 무기로 변해시도 때도 없이 동공을 공격했다 흐릿한 거울 속에 충혈된 눈동자가 안쓰러워안과에 다녀오면 며칠 잠잠하다가다시 눈동자를 찌르기 시작할 때면족집게를 한바탕 휘두른다 결국엔 성형외과 수술실 침대에 누워가시가 올라오는 곳을 막았다 이제는 찌르지 않는 눈을 가만히 들여다보며지나온 삶을 더듬어 보는데그동안 얼마나 많은 가시를 만들어나를 찌르고 남까지 찔렀는지가슴이 따끔거린다 마음속
미련 서점 운영 노하우 살려 서재를 정리했다안양천으로 난 창문만 빼고 찾기 쉽게 꽂았는데쉬지 않고 발간되는 신간한 달에 몇 권만 받아도 금방 쌓인다 종이봉투 뜯지도 않은 채 책상 위에 쌓이고절반은 아직도 열어보지 못한 것깊은 맛을 제대로 음미하기 위해 한 번 더 읽겠다며한쪽에 쌓아두어 바닥까지 넘쳐난다 애지중지하던 심리학 교재들시 창작론 세계문학전집과 백과사전월간지 계간지 각종 논설류성경주석까지 치우기로 작정했다 버릴 책을 현관 입구에 쌓아두고며칠 동안 들여다보고 망설이다가한 권 두 권 다시 서가에 꽂으면서폐기된 건 겨우 한 박스
당신께 날아갑니다 혼자서는 날지 못하는 한 마리 새당신이 함께할 때 날 수 있습니다떨어지기 전에 받아주지 않으면맥없이 나동그라질 것입니다 힘을 다해 차고 올라순간을 스쳐 가는 공중의 길마음의 높이를 가늠했어도날개를 한껏 펼칠 수 없었습니다 바람을 관통해야만 갈 수 있는 곳하늘 향해 두 손을 모읍니다길을 놓치지 않으려팽팽히 당긴 생각이 위로 뻗어갑니다 때로 막다른 길에서숱하게 바닥으로 곤두박질쳤지만온 힘을 다해 만든 둥근 울타리가상하고 찢긴 나를 감싸 줍니다 거침없이 솟아오르고 싶었던 욕망의 끝에서마지막 힘을 다해푸드덕,새가 되어 당
멀어져간 천국 사람들로 붐비는 지하철똑 똑 똑 지갑을 노크하며지팡이가 바닥을 더듬는다 짙은 선글라스 사내하늘가는 밝은 길을 부르는데천국은 나와 상관없다며두 귀를 막은 사람들 승객들 사이를 비집고한 칸 한 칸 이동하는 남자허리춤 낡은 기계에선허공을 두드리는 노래가 퍼지는데바구니엔 달랑 동전 몇 개뿐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지갑을 만지작거리며계산만 한다 언젠가 텔레비전에서 보았던불편한 진실지하철 순례가 끝나면말끔한 옷으로 갈아입고퇴근하던 모습 천국이 내 앞을 스쳐한 걸음씩 멀어져간다
모과 사람들 사이에 심으시고물은 충분한지햇빛과 바람은 적당한지병충해에 시달릴까새들이 와서 쪼아댈까밤낮으로 살펴주십니다 웃자란 가지 잘라내어튼실한 열매 만들어주시고꽃피우던 봄날 지나하늘을 가린 무성한 잎사귀 아래주렁주렁 안겨주십니다 울퉁불퉁 못생긴 얼굴이슬로 씻고 햇빛으로 분칠합니다단단하고 곧은 심성을 가졌지만남몰래 벌레가 낸 흔적들그 사이로 길 한 줄기 뻗어있습니다 그 길 따라 몸의 말을 뱉어내고상처가 깊을수록 향기는 짙어갑니다 짓무른 살을 어루만져 주면서세상에 향기를 전하며 살다가아버지 집으로 어서 오라 하십니다
몸부림 고구마 캐려고 땅을 파헤쳤더니거기에 살고 있는 생명들이발 빠르게 피난하는전쟁터를 방불케 한다 개미 지네 땅강아지 노래기시위도 할 수 없는 무기력한 것들저마다의 방법으로 목숨을 지키려는저 안쓰러운 몸부림 지금까지 살면서사람들 가슴에 호미질을 하지 않았을까큰 죄를 지은 것 같아 고구마를 캐다 말고방망이질하는 가슴 쓸어내린다 욕심을 버리지 못해힘없는 사람들에게 함부로 대하진 않았는지가까운 사이라고격의 없이 대한다며 가슴을 후벼 파진 않았는지갈수록 어둑해지는 마음 깊은 밤 베개를 흥건히 적시도록 회개하면잊고 살았던 죄까지 없어지려나
흐린 날 꽃나무 살아가는 모습이 따로따로팔손이 군자란 관음죽반지르르하게 빛나는데유독 영산홍만 풀이 죽었다 붉은 꽃 매달고 몸매 자랑 한창일 봄인데이파리 군데군데 검은 점화분 속이 비명으로 가득해윤기 없는 잎사귀들이 힘없이 떨어진다 똑같이 물 주고 거름 주고햇빛 잘 보이는 곳에 두었는데무엇이 힘들었을까나 또한 까칠하여같은 공기 마시고 같은 바람 쐬면서도먼저 손 내밀지 못했다 생의 변두리에 앉아버린 내 안에서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주인이 보고 무어라 하실지짐작조차 하지 못해 괴로운 날이 오래되었다 어둠이 밀려오는 베란다에 쪼그리고 앉
그 여자의 겨울 자동차 핸들이 좌로 우로 흔들리면서엉금엉금 기어 도착한 산동네생활지원금으로 구했다는 사글셋방현관에서 안방 경대가 다 보인다 늘상 술에 취해 있는 어미를보다 못한 아들문짝을 있는 힘껏 걷어차고 떠난 후소식을 알 수 없단다 3개월째 요금이 밀린 도시가스 배관은골목 어디쯤 올라오다 막혔는지영하 십 도가 넘은 날씨문짝마저 떨어져 나간 방에가득 웅크리고 있는 냉기체온을 빼앗으려 달려든다 전기장판 하나로 몸 녹이고부탄가스로 밥하고 물 데우며 산다는 그녀멋쩍게 웃으며방석 대신 이불을 깔고 앉는다 허허벌판 그 여자네 집기침이 쿨럭
일출 그때,다시 일어나지 못했던 것들을 보네기도하는 무릎이세상을 다시 만든다는 것을미처 몰랐네보이지 않는 손이태양을 끌어 올리고 있네어둠의 휘장이 찢어진 자리, 오늘이 활짝 열리네새까맣게 뒤덮였던 어둠과의 사투밤을 이기고 솟아오르려 애쓴 얼굴벌겋게 달아올라 자랑이라네고통의 사슬이 끊어지는 순간햇살이 떠오르네혼돈조차 평화라고 믿었던 시간가득한 해무를 뚫고 나오네누구도 대신 할 수 없는그곳은 내가 가야 할 길뒤돌아보니어둠 속에서주저앉았던 흔적만 보이네그 사이로기도하지 못했던사람이 보이네
기도방석 두툼한 목화솜을 가득 채운방석의 꿈은 구름처럼 부풀었다 한때는 기도 소리에 온 집안이 젖었었다몸이 불편한 어머니는예배당 가는 것도 어려워방석 위에 엎드려 두 손을 모았다 어머니 세상 떠나고 식구들은바쁘다 바쁘다만 외치더니심장은 식어가고 입은 지퍼처럼 닫혀기도 소리 사라지고귓속엔 씀바귀 꽃물만 가득했다 습관처럼 외치는 빨리빨리막막한 내일만 보고 달리느라모두 속도전에 내몰렸다 뛰어다니던 관절 망가져밖에 나가지 못한 지 몇 달째오랫동안 장롱에 갇혀있던 방석을 찾으니점점 굳어가고 있다가 반색을 한다 골방 한쪽에 엎드려 있던어머니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