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잉 충성은, 어리석은 주인이 죽을 때 까지만 허용되는 토사구팽(兎死狗烹)되어 마땅한 죄인 것 이다.

그리스도인으로 지혜와 혜안을 갖춘 탁월한 정치인인 이승만 대통령이 4.19로 권좌에서 쫓겨나고 초라한 말년이 된 원인이 어디에 있었을까. 곁에서 과잉충성하고 아부하는 측근들을 경계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훈련된 개는 함부로 짖지 않는다.

동네 똥개는 한 놈이 짖으면 덩달아 제 그림자 보고도 온 동네가 떠나간다.

훈련 안된 개는, 주인이 반갑다고, 나들이 새 옷에 올라타는 과잉충성을 해 미움을 자초 한다.

충성은 배운대로 짖는 ‘개의 본성’ 만을 말하는 것이다.

훈련 안된 개는 미친개와 구분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우리 자신이 지금 잘한다고 짖고 있는 행위가, 시민을 위해 도움이 되는 충성 행위인지, 자해 행위인지 목소리를 낮추고 가다듬을 때인 것이다.

똥 묻은 개가 되어 겨 묻은 개를 꾸짖으며 짖는 소리는 더욱 낯추어야 될 줄 안다.

배움 없이 크게 짖기만 하는 겁 많은 똥개는 도둑이 들어와도 물지 못한다.

그렇게 함부로 짖어대는 과잉 충성은, 어리석은 주인이 죽을 때 까지만 허용되는 토사구팽(兎死狗烹)되어 마땅한 죄인 것 이다.

일반적으로 과잉충성 자들은 ‘계산의 천재’라는 중요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영전, 권력, 부귀영화로 가는 방정식을 계산하는 능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여 스스로에게 이익이 있다면 자신이 모시고 있는 주군(主君)이 설사 잘못된 길을 가더라도 벼랑 끝으로 길을 안내한다. 끊임없이 그 길이 옳은 길이라고 주술하면서 나락의 길로 몰고 간다.

특히 과잉충성 자들은 보통사람과 다르게 탁월한 언설(言說)로 교언영색(巧言令色)하는 데는 남다른 재주를 지니고 있다. 주군이 잔기침을 하면 제치기를 넘어 독감으로 둔갑시키기 일쑤고, 눈치가 특히 발달하여 온갖 몸짓으로 비위를 맞추는데 비상한 재간을 가지고 있다.

문제는 모시는 사람의 권력이 크면 클수록 이런 자들에 의해 비극이 발생된다는 점이다. 총애와 신임을 무기로 자신은 호가호위하면서 끊임없이 문제를 일으키는 사례가 허다하다.

그리고 과잉충성분자들의 더 큰 해악은 눈과 귀를 가려 대의를 보지 못하게 하고, 소아적 협의에 갇히게 만드는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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