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카토 미래교육 봉사단 대표 정선희
레카토 미래교육 봉사단 대표 정선희

# 앵글로-색슨 모델과 우리나라 교육

우울한 분위기를 전환하기 위해 우리가 흥미로워하는 경제 이야기를 잠시 해보려 한다.

경제학에서 노동자로서의 인간을 바라보는 관점에 관한 이야기다.

그 첫 번째는 대부분의 미국 기업으로 대표되는 ‘앵글로-색슨 모델(Anglo-Saxon model)’이다.

앵글로-색슨 모델은 자본, 토지, 인간 순으로 중요도를 인지한다.

자본이 최우선순위의 중요도를 갖는 가치로, 인간(노동)은 가장 낮은 중요도로 평가하는 것이다. 이들에게 인간은 대체 가능한 부속이다. 노동자는 자본가의 밑에 위치한다. 이들 국가에서의 복지란 노동자의 생산성 향상에 기여하는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앵글로-색슨 모형을 주도했던 월스트리트(Wall Street) 이데올로기는 '경쟁적 성과주의(competitive meritocracy)'였다.

피라미드 구조로 조직을 계층화하고 개인에 서열을 매겨 능력에 딱지를 붙이고 그렇게 평가된 능력에 따라 ‘성과급’과 ‘권력’을 부여하는 것다. 인간은 그럴 수 있는 부속품으로 인지하고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그러면 구성원들은 피라미드의 계단을 오르기 위해 끊임없이 경쟁하고 그 과정에서 조직은 더 높은 성과를 달성하게 된다는 논리를 펼쳤던 것다.

이 일화에서 미국을 한국으로 바꾸고 월스트리트를 우리나라 대기업으로 바꾸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는 사실이 놀랍기만 하다.

한국전쟁 후 그 긴 시간 우리나라는 미국을 동경했다. 먹고 살만해지고, 우리가 우리를 돌아봤을 때, 우리는 미국의 아류인 나라가 되어 버렸던 것이다. 앞서 언급한 신자유주의가 팽배한 나라, 그 사회 환경 안에 놓인 교육. 그것이 ‘입시지옥’의 본질인 것다.

그렇다면 이 답답한 현실에 대안은 무엇일까?

# 게르만·스칸디나비아 모델

‘라인란트 모델(Rhinelandmodel)’이라고도 알려진 독일등 유럽국가의 ‘게르만·스칸디나비아 모델(Geruman/Geruman model)’이 그것이다.

게르만 모델은 정확히 앵글로-색슨 모델의 역순이다. 인간, 토지, 자본 순으로 그 중요도를 인지한다. 자본을 가진 자본가보다 인간이 우선순위에 있는 구조다 보니 인간 개개인의 가치를 중요하게 여긴다. 사회의 문화는 수평적이며, 민주적이다.

‘애플(Apple)’뿐만 아니라 ‘아마존(Amazon)’, ‘페이스북(Facebook)’, ‘넷플릭스(Netflix)’, ‘구글(Google)’등 미국을 먹여 살리는 서부 기업들의 경영방식은 전통적인 앵글로-색슨 모형과는 차이가 있었다. 이들 ‘실리콘 밸리(Silicon Valley)’의 기업은 월스트리트 방식으로는 혁신의 싹을 틔우는 게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래서 월스트리트에서 가장 먼 반대편 땅에서 새로운 경영방식, 게르만 모형을 실험했고 그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실리콘밸리는 '사람이 일을 창조한다'는 정신에서 출발한다. 스스로 일할 동기를 가진 인간의 자율성을 존중하고, 연대와 협력의 가치를 강조한다. 이를 함축하는 말이 스티브 잡스(Steve Jobs)의‘조직은 계층구조가 아니라 아이디어로 운영되어야 한다’이다.

1970년대 이후 세계적인 불황과 함께 잉태되어 1980년대 영국의 대처리즘(Thatcherism)과 미국의 레이거니즘(Reaganism)을 타고 전 세계를 장악한 신자유주의, 앵글로-색슨 모델의 한계는 이미 들어난 것이다. 중국과 같은 나라마저 국가 경제 모델로 게르만 모델을 언급하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우리가 늦거나 뒤처진 것은 아니다. 사실 우리의 교육체계와 철학은 이미 유럽 복지국가의 교육을 지향하고 학교에서는 다양한 방식으로 게르만 모델을 실험하고 있다.

# 고교학점제와 우리의 과제

이제 이미 부분 적용된 고교학점제는 2025년 전면시행을 눈앞에 두고 있다. 전면시행을 앞두고 여전히 많은 생산적 논의 중에 독일의 중고등학교에 해당하는 ‘김나지움(Gymnasium)’의 ‘오버슈투페(Oberstufe)’ 학점제 방식 등 까지도 언급되는 상태다.

심각한 입시문제의 가장 큰 요인이 인간중심의 복지국가를 지향하는 교육 철학과 신자유주의가 팽배하는 사회의 괴리 때문이었다면, 더불어 이제 세계에서 그 흔적을 찾기 힘든 전근대적 정답 맞추기 중심의 시험이었다면, 이제 비로소 우리는 입시지옥을 빠져나올 때가 된 것이다.

경쟁 중심의 입시와 앵글로-색슨적 사회 시스템의 무간지옥에서 빠져 나올 때인 것이다. 고교 학점제의 주사위는 던져졌다.

더 이상 비정상적 사교육이 없는 나라. 학부모 A 씨나 그의 자녀 같은 이들이 없는 나라. 그 시간과 자본을 자녀의 진정한 행복을 위해 투자하는 나라. 인간 중심의 세상에서 창의와 협력으로 살아가는 세상.

입학사정관제나 학생부 종합 전형과 같은 커다란 불행의 시행착오를 겪지 않으려면 제도의 명분이 공허한 외침이나 정치적 수사가 아닌 현실이 되게 하려면 우리들 모두는 함께 고민해야만 한다.

어떤 정책 시행을 무 비판적으로 받아들이고 빨리 적응하여 생존할 길을 찾던, 자본주의의 부속품 인생을 우리 아이들에게 물려 줄 수는 없다.

가장 강력한 교육이 부모의 사고와 행동이라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우리가 고교학점제와 같은 정책의 입안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고 다양한 의견을 개진하는 것. 그것이 바뀐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아이들에 대한 가장 강력한 교육일 것이다.

18세기 계몽주의 학자 클로드 아드리앵 엘베시우스(Claude Adrien Helvétius)가 그의 저서 ‘정신에 대하여(De l’esprit)’에서 말하듯 교육은 인간 존재를 생산하고 변형하는 활동 일반으로서 확장된 의미를 얻는다.

그저 자연인으로 주어진 세상을 살아가는 아이들이 아닌 세상을 발전시키고 변화시키며, 동시에 스스로 행복한 주체로서의 아이들을 위해 올바른 교육이 필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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