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카토 미래교육 봉사단 대표 정선희
레카토 미래교육 봉사단 대표 정선희

# 과연 학생부 종합전형은 세계적인 추세인가?

학생부 종합전형을 지지하는 측에서는 입학사정관제가 세계적 추세이고, 선진국에서 보편화된 제도인 것처럼 선전하기도 한다.

하지만 학생부에 '비교과'를 반영하는 나라는 미국, 영국, 대한민국, 일본밖에 없다. 심지어 일본의 일부 대학에도 입학사정관제가 있다고 하지만 도입 비율이 10%도 안되는 것이 현실이다.

프랑스는 우리의 논술에 해당하는 수능인 ‘바칼로레아(Baccalaureat)’ 성적만을 반영하고, 캐나다는 내신 성적만을, 독일은 프랑스의 바칼로레아와 유사한 ‘아비투어(Abitur)’와 내신 합산만을, 스웨덴은 수능과 내신을 양자 택일 하여 반영한다.

이렇듯 대부분의 선진국에서 학생을 선발할 때 '성적'만 보는 이유는 '교육'이 가진 특수성이 있기 때문이다. '교과'와 '비교과' 중에서 부모의 영향력이 더 크게 작용하는 것이 '비교과'이기 때문이다. 부모의 학력, 소득, 문화 등의 요소는 그 영향이 교과 보다 비교과에 더 크다. 비교과를 반영함으로써 부모의 영향력이 보다 크게 작용하게 되면 교육의 '공공성', '기회균등' 등의 원칙이 위협받는다고 보는 것이다.

그럼 왜 미국은 입학사정관제 같은 제도를 가지고 있을까?

# 미국의 입학사정관제 역사와 기능

20세기 초 미국의 아이비리그 대학 신입생 중에서 유대인이 차지하는 비율이 급증한다. 이에 위협을 느낀 미국의 주류(WASP : 앵글로-색슨계 혈통의 개신교 백인)가 그에 대한 대응으로 마련한 게 입학사정관제였다.

성적순 선발에서 유대인이 워낙 강세를 보이자, 이를 보정할 목적으로 비교과를 도입한 것이다. 이후 1960년대 여성이나 소수인종에 대한 적극적 우대법률(Affirmative Action)이 시행되는 등 부분적으로 그 성격이 변화되면서 오늘에 이른다. 심지어 미국의 사립대들은 입학사정관제 특유의 불투명성을 활용한 일종의 학벌 장사를 하고 있다.

바로 기여입학제(legacy admission)가 그것이다. 아이비리그 대학들의 기여입학제 비율은 13%로 추산된다. 동문과 기부금을 많이 낸 사람들의 자녀에게 혜택을 주는 것이다. 이는 오직 미국에서만(그것도 사립대에서만) 볼 수 있는 극히 예외적인 제도다. 더불어 우리나라에서 한참 논란을 만들던 수시에서의 고교등급제 역시 미국에서는 대놓고 유효합니다. 명문 사립고등학교에 다니면 명문사립대에 입학하기에 유리한 것이다.

우리는 선뜻 이해하기 힘든 이런 제도들이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확립되어 있는 나라가 바로 미국인 것이다. 당연히 미국에서도 이런 선발제도의 문제에 불만을 제기한 사람들이 많다. 다만 연방대법원까지 올라간 소송들에서 사법부가 일관되게 대학의 자유재량권(discretionary authority)에 손을 들어주었기 때문에 이 제도가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다.

이러한 입학사정관제는 미국이라는 나라의 이면을 보여주는 제도다. 가장 부자인 나라이며 돈이 없으면 가장 힘든 나라. 총기 협회와 글로벌 제약사의 합법적 의회 로비로 끔찍한 인명사고와 약물중독이 끊이지 않는 나라. 명분을 내세워서 전쟁으로 이익을 취하거나 기득권을 유지하는 나라.

미국의 입학사정관제가 내세우는 명분은 분명 훌륭하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 제도가 미국이 지향하는 신자유주의적 질서를 공고히 하는데 쓰이고 있다. 미국의 학부모와 학생들에게는 너무도 유감스럽지만 입학사정관제는 미국과 너무도 잘 어울리는 제도인 것이다.

그런데 이 미국의 현실이 우리에게도 다가오고 있다. 이제 우리의 ‘입시지옥’을 살펴본다.

# 우리나라 입학사정관제의 도입 배경

우리의 입학사정관제 도입은 이러한 미국 입시의 기형적 측면을 몰랐던 착오일까?

우리 교육이 지향하는 바는 미국이 아닌 프랑스, 독일, 스웨덴등의 유럽 복지국가에 가깝다.

그런데 앞서 언급한 것처럼 영국과 미국을 제외한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입학사정관이라는 제도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대다수 나라의 입시제도는 예전 우리의 수능, 논술, 내신 반영 때처럼 단순하다. 왜 고 노무현 대통령 시절 당시 미국의 입학사정관제를 도입하려 한 것일까? 그 이유는 미국의 대학입학자격시험(SAT), 일본의 대학입시센터시험(大学入試センター試験)과 유사한 우리의 대학수학능력시험(大學修學能力試驗)에 있다.

이들 세 나라의 공통점은 학교 시험 자체를 객관식과 단답형으로 출제한다는 점. 즉 모든 과목에서 답을 요구한다는 점이다. 물론 이들 국가의 시험에서 조차 수능 언어영역의 ‘현대시’나 ‘문학’은 출제되지 않는다.

포스트모더니즘(postmodernism)이나 관객론(Audience theory)처럼 예술 작품의 다의적 주관적 해석이 당연시 되는 현대 사회에서, 곡해된 작가론(Author theory)에 입각한 우리의 내신과 수학능력시험의 문제들은 여전히 출제자의 일방적 의지를 쫓아야만 맞출 수 있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입학사정관제 도입 당시 교육부의 고민을 읽을 수 있다. 객관식, 단답형 시험으로 초·중·고등학교에서 길들여진 학생들을 갑자기 수능에서 ‘바칼로레아’나 ‘아비투어’같은 논술형, 토론형 시험에 응하게 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었다.

그러나 기존의 시험 성적 중심의 교육은 그 한계와 병폐가 명확했기에 당시의 정부는 입학사정관제를 받아드린 것이다.

일제의 교과 편제를 거의 모사한 독립 이후, 1946년부터 시작된 일제고사가 1982년에 학력고사 시대를 거쳐 1993년에 대학수학능력시험으로 바뀔 때 까지 우리나라 학생들, 부모, 교육자들은 객관식, 단답형 시험에 길들여져 있었다. 그 유구한 획일적 시험의 역사를 하루아침에 바꾸는 것은 불가능한 일 이었다.

폐단은 명확하지만 그 명분 만큼은 이상적인 미국식 입학사정관제를 수정하여 우리의 시험체계를 보완하는 제도로 정착, 궁극적으로 객관식, 단답형의 시험을 혁파하는 것. 그것이 당시 정부의 의도였던 것이다. 게다가 우리는 미국처럼 신자유주의적 빈부격차나 학력 격차를 당연시하는 나라도 아니기에 몇 번의 시행착오와 이에 따른 진통을 거치면 입시지옥을 탈출 할 수 있다는 이상(理想). 그 이상이 입학사정관제를 도입한 취지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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