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카토 미래교육 봉사단 대표 정선희
레카토 미래교육 봉사단 대표 정선희

얼마 전, 고등학교 진학을 앞둔 학생의 학부모 A 씨의 전화를 받았다.

대치동 0000학원의 000강사에 대한 정보를 묻는 전화였다. 이제는 시간이 흘러 잘 모른다고 대답했지만 그녀는 집요했고 또 절실했다.

다른 이를 통해서라도 알아보고 연락하겠노라고 답하고 서재를 뒤져 15년 전의 수첩을 꺼내어 들었다. 빼곡히 적힌 학원 이름과 강사연락처, 그리고 그들의 학벌, 교재, 강의 특징 장·단점 등을 보며 당시가 생각났다.

15년 전 저는 아이의 학습에 전전긍긍하며 대치동, 목동의 학원을 들쑤시던 엄마였다.

급기야 아이가 대치동까지 오가는 시간이 아까워서 아예 그 강사들을 모셔와서 학원을 차릴 정도였던 저는 거의 ‘스카이캐슬’이라는 드라마에 나오는 부모의 현실판이었다.

우습게도 이런 극성이 저를 동네에서 유명인사로 만들어 버렸다. 아이가 대학생에 된 지가 오래인 지금도 그 유명세가 남아, 학원가에 대한 질문을 들을 정도로 말이죠.

돌이켜 보면 부끄럽기 짝이 없는 기억이다. 그 기억의 유일한 장점은 당시의 과오를 참회하는 심정으로 시작한 교육 봉사가 힘들 때 초심을 잃지 않게 해준다는 점이다. 학부모 A씨의 마음은 너무도 안타깝고 한편으론 이해 할 수 있는 것이었다.

15년 전이나 지금이나 부모와 아이들 모두에게 입시는 너무도 두려운 존재다. 이것은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세상이 많이 변했고 우리나라는 이렇게 발전했으며, 사람들의 인식은 많이도 바뀐 것 같은데 말이다.

또한 지금의 입시제도를 만든 어느 누구도 학생과 학부모를 과도한 입시 경쟁에 내몰려는 이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왜 우리는 아직도 이런 ‘입시지옥’에서 살아가고 있는 걸까?

# 야심차게 시작한 입시개혁 입학사정관제

2004년 고 노무현 대통령이 야심차게 발표한 대학입시 개선안은 2008년부터 적용되었다. 서울대 및 서울 주요 10개 사립대가 입학사정관제를 도입, 실시하기 시작했다.

이 제도는 현 학생부 종합전형의 전신과 같은 제도였다. 학생의 창의성과 적성을 대학선발 기준으로 명시하면서 이 제도는 사교육비 경감에 효과적이며 동시에 창의적 인재를 선발할 수 있는 대안이라고 평가받았다.

하지만 불명확한 선발 기준과 크고 작은 비리, 결정적으로 자기소개서나 다양한 비교와 활동에 대한 컨설팅들이 난무하면서, 제도의 보완이 이루어진 현재까지도 그 잡음이 끊이질 않고 있다.

결국 전체 대입 정원의 약80% 까지 폭증하던 학생부 종합 전형 선발 인원은 그 폐단에 대한 지적으로 인해 급감, 50%이하로 떨어지게 된다.

분명 고 노무현 대통령 시절, 입학사정관제의 전격 도입은 완벽하진 않았지만 입시의 폐단에 신음하던 학생, 학부모들에게 단비와 같았다. 그 취지는 학생들의 인권을 보호하고 비합리적, 전근대적인 획일적 줄 세우기 입시와 학습을 혁신하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현실은 변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 극악으로 치달았다.

물론 입시지옥의 원인은 너무도 다양하다. 하지만 이 대목에서 특히 우리가 주목해야 할 지점은 학생부 종합전형의 시작, 입학사정관제 출생의 비밀이다.

# 학생부 종합전형의 시조는 미국의 입학사정관제

익히 알려진 대로 입학사정관제(admission officer)나 학생부 종합전형은 모두 미국의 입시 모델을 참조한 형태다. 미국대학 지원제도에는 우선 한국의 정시에 해당하는 레귤러(Regular)가 있다.

한편 합격시 타 대학 지원이 불가한 얼리 디시전(Early Decision)과 여러 대학을 모두 지원할 수 있는 얼리 액션(Early Action), 그리고 한국 학생들이 가장 선호하는 스탠포드, 예일, 하버드, 프린스턴등의, 얼리 액션과 유사하나 하나의 학교만을 선택해야하는 '얼리 액션 싱글 초이스(Early Action Single Choice)'와 같은 제도가 있다.

통상 이들을 ‘얼리(Early)’라 칭하고 이는 우리의 학생부 종합전형과 같다. 이는 대학이 우수한 학생들을 확보하기 위해 채택한 제도라고 알려져 있다.

‘얼리’는 학생의 교과성적뿐 아니라 동아리 활동, 외부 활동 실적등 비교과 활동을 적극적으로 반영하여 교과 성적에서는 나타나지 않는 창의성, 인성, 친화력, 문제 해결력 등을 판단, 우수한 학생을 선발한다는 제도다.

이는 우리의 학생부 종합전형이 내세우는 취지와 거의 같은 맥락이다. 당연히 제도의 유사성이 많을 수 밖에 없다.

새로운 교육으로 학생의 역량을 제대로 판단하는 세계적 추세에 걸맞는 제도로 평가 받던 입학사정관제. 그런데 거기에 불편한 진실이 숨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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